“이방인”

나는 이곳에서 지난 십년 동안 이방인이었다.

한국어로 겨우 내 이름 석자를 쓸 수 있게 되었을 때 쯤, 나는 처음으로 서울 외곽 한가운데에 있는 학교에 발을 디뎠다. 독도가 어디에 있는지, 위안부가 무엇인지 알기에는 너무 어렸던 나이에 내가 넘어야 하였던 벽은 생각보다 컸다. 반에서 일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때마다 아이들은 나를 경멸의 눈빛으로 쳐다보았고, 나이가 지긋했던 담임 선생님은 그런 나를 그저 바라보기만 하셨다. 뿐만 아니라 말이 안통해 더듬거리는 내가 꽤나 귀찮으셨는지 내가 왼손잡이인걸 트집 잡아 왼손으로 글씨를 쓰거나 밥을 먹을 때마다 아이들 앞에 나를 불러 세우고 손바닥을 때리며 면박을 주시곤 했다. 지금이야 교권이니 뭐니 하여 말도 안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십년전의 나는 이 모든 걸 직접 겪어야 했다. 조금 더 나이가 들기 시작하자 나는 과연 내가 누군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내가 과연 이곳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계속 고민했다.

이러한 나의 뒤에는 나와 같은 고민을 이미 수차례 했을 엄마가 있었다. 몇십년 전 학창 시절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 와 엄마가 혼혈아로써 겪었던 차별은 내가 경험했던 것보다 상상 이상으로 심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엄마는 그림을 돌파구로 찾았고, 그 중에서도 특히 전통미술인 민화를 통해 예술인의 삶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런 엄마를 보며 나도 전통예술을 통해 한국의 뿌리를 알게 되면 내 정체성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매일 엄마에게 그림을 배웠다. 한지에 호랑이, 모란을 새겨넣을 때마다 엄마는 이 그림들이 한국 전통에서 무슨 의미를 갖는지 알려주곤 했다. 모란은 복, 호랑이는 수호신 등등.. 엄마는 어떻게 돌을 곱게 갈아 영롱한 색깔을 만들고, 적절히 발임을 하여 한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지 가르쳐주었다. 그렇게 오색빛깔로 채워지는 종이를 보며 나도 언젠가는 엄마 같은 아티스트가 될거라 생각을 하였고, 이런 막연한 꿈을 갖고 나 또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다. 민화를 운동화에 그려보거나, 부채에 민화를 그려 외국인 친구들에게 선물해주거나, 서양화 그림을 한국적으로 패러디하기도 하였고 그렇게 예술에 대한 애정을 키워갔다.

한편으로는 우연히 접하게 된 해금을 시작하여 국악 또한 배우게 되었다. 내 또래 아이들이 모두 플룻이나 바이올린을 배울 때 전통악기를 손에 잡았고, 서툴지만 천천히 소리를 가꿔나갔다. 고작 두줄로 모기가 앵앵거리는 듯한 높은 음부터 거룩하고 낮은 음까지 수천가지의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악기도 사람처럼 가꾸어 나가기 나름인지 8년동안 내 악기는 내게 길들여져서 나만의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내가 전통 예술을 사랑하게 될 때쯤 나는 내가 드디어 한국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된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돌아오는건 무시였다. 미술에 빠져 중학교 때 입시미술학원에 갔을 때 선생님은 내 포트폴리오를 보며 뭐하러 민화를 그리는지 물었다. 서양화만 몇십년을 붙잡고 있던 선생님의 눈에 전통 그림은 그저 돈벌이 안되는 올드스쿨로만 비춰졌을 것이다. 선생님은 내 선들이 너무 자유롭다 말했고, 내 색감이 지나치게 동양적이라 말했다. 본인만 믿고 따라와주면 내 지나치게 자유로운 그림체를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그렇게 나는 뭣도 모르고 기계처럼 그림을 그리게 시작했고, 매일 이젤에 앉아 데생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육개월쯤 지났을 때 나는 내가 그리는 선들이 내 옆의 아이들의 손에서 그려지는 선들과 같아졌다는걸 깨달았다. 내가 고작 남들과 똑같은 그림을 찍어내는 기계가 되었을 뿐이라는걸 알게 되었을 때 쯤 나는 학원을 관뒀다. 선생님은 내가 아티스트도 아닌 주제에 병적으로 고집을 부리는 거라 했다. 나는 당신이 말도 안되게 폐쇄적인 것이라 말했다. 그 후로 나는 미국에 올 때까지 손에 붓을 다시 쥐지 않았다.

국악 또한 마찬까지였다. 사람들은 예술의 전당의 큰 홀에서 몇백명의 관객을 거느리고 멋있게 드레스를 입고 연주하는 클래식 음악인들을 보며 존경한다 말했다. 사람들은 그들이 세련되고 수준이 높다 말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국악인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주지는 않았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산조와 정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찾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나 또한 마찬까지로, 국악을 연주할 때마다 지루하다, 잘 모르겠다, 굳이 듣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의 평을 견뎌야 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유명한 클래식 음악인을 아냐 물었을 때 사람들은 모차르트니, 베토벤이니 아는 척을 하기 일쑤였지만 혹시 우리 음악에 대해 아는 것이 있냐 물었을 때는 자신과는 상관없는 것이라 치부했다.

이렇게 내가 사랑하는 것에 대해 끝없이 부정받게 되었을 때, 그리고 학교에서도 끊임없이 서툰 한국어로 힘들어 해야 했을 때, 나는 엄마에게 이제 모든 걸 놓아버릴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 더 이상은 상처받기 싫다고, 그냥 유학을 빨리 보내 달라 말했다. 하지만 엄마는 내게 맞서 싸우라 말했다. 십년전의 본인처럼, 일단 부딪혀 보라 말했다. 나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마야 말로 내가 온전한 한국인이 아니기에 겪는 고통들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터인데 왜 딸에게 이런 고통을 겪으라는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엄마는 단호하게 말했다. 결핍이 없는 사람에게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고.

이해가 되지 않는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엄마 또한 하프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끊임없는 차별을 당하다 그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는 전통예술을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겪었던 것처럼, 민화에 대한 엄마의 애정을 존중해주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엄마의 그림을 본 교수는 자신의 방식대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고 과제를 찢어버리기도 했고, 사람들은 인사동에 있는 엄마와 엄마의 스승님의 작업실을 대놓고 무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유명 브랜드의 디자이너 오퍼를 거절하고 민화에 올인하기로 결정할 정도로 전통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상처를 받고도 왜 엄마는 아직도 아침에 일어나면 손에 붓 부터 쥐는지, 왜 아직도 벽장을 민화 작품들로 가득 채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엄마는 말했다. 본인이 그럼에도 끝없이 그림을 그리는건, 전통예술에 모든 커리어를 바치는건, 이것이 자신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라 말했다. 물론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그저 옛것, 그저 현대 사회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으로 치부받고 있지만 언젠가는 엄마가 그리는 그림이 한국 사회에 받아들여질 수 있을 거라 믿는다고 했다. 엄마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는 것이라 말했다. 그저 똑같은 그림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도를 해가며, 어떻게 해야 민화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연구하고 있는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나 또한 이 모든 상처를 딛고 도전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하였다.

어쩌면 전공생도 아닌 내가 전통을, 또한 예술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건방을 넘어서 무례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다. 나는 이곳에서 이방인이었고, 이방인이어왔고, 앞으로도 이방인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내 정체성의 모든 부분들이 부정 받아왔고, 앞으로도 부정 받을지도 모른다. 내가 쿼터 일본인이라는 사실도, 대중적이지 않은 민화와 국악을 사랑하는 사실도 지금까지 그들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모습들이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가 이방인이 아니라는 것을, 나와 내가 하는 예술 또한 마찬까지로 한국의 일부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대중과 다른 것을 억압하고 사람들이, 또한 모든 예술이 같아지길 바라는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이방인 취급을 하며 많은 것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 나 또한 엄마가 걸어온 길처럼 나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표현하고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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